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 에베소서1장3절
🕊️ 12일의 고민, 아들의 입술로 찾은 ‘신령한 복’
막내 은제에게 온 고등부 목사님의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가 나를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은제야, 같이 선교가자.”
고민의 무게는 12일이라는 숫자에서 비롯되었다. 12일. 이 기간은 고등학생에게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계산하면, 이 시간 동안 과목 하나를 집중해서 끝낼 수 있는 소중한 공부 시간이었다. 학원 일정과 진도를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에선 ‘어떻게 12일을 비울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염려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러한 고민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막내 은제 역시 학원 일정과 밀릴 공부를 걱정하며 나와 같은 근심을 나누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확신이 필요했다.
고민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나는 가장 큰 동역자, 큰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목사님께서 은제에게 선교 가자고 하셨대. 어떻게 하지?”
큰 아들의 대답은 예상 밖으로 단호하고 간단했다.
“가면 되죠.”
“그러면 공부를 못하잖아, 학원을 못 가잖아.” 나의 반응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때, 큰 아들은 내 마음에 깊숙이 박히는 질문을 던졌다.
“엄마,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뭐예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얽매고 있던 모든 계산과 염려가 일순간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고민은 그 대답 하나로 끝이 났다.
아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난 후, 에베소서의 말씀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 완료형으로 **’주셨다’**는 그 말씀.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의 기준으로 재단하려 했던 이 자녀들, 나의 두 아들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미 내 삶에 허락하신 **’모든 신령한 복’**이라는 것을.
큰 아들은 단순히 아들이 아니라, 나를 이끄는 동역자였고, 나의 인생 여정에 빛을 비춰주는 조력자였다. 나의 어설프고 흔들리는 신앙심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들의 지혜로운 입술을 통해 나에게 직접 말씀하여 주셨다.
나의 가장 신령한 복, 사랑하는 큰 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이미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찬송하리로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찬송라리로다 라고 고백해야겠다.